글 이예지/사진 이병률,이재안,전소연 ㅣ 2011-12-09
벌써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책. 하지만 올 한해 동안 이 책은 출간되었던 그 시절만큼이나 계속해서 화제가 되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화제의 불씨가 생겨난 곳은 우리 나라를 넘어선 미국이었다.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엄마를 부탁해」가 영문으로 번역되어 미국에서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판매 호조를 보이며 미국 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으며,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 닷컴에서 문학, 픽션 부문 올해의 책 베스트 10에 뽑히고, 분야 장르 구분 없이 선정하는 올해의 책 베스트 100에도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그렇게 여기 저기서 날아든 소식이 그녀의 이야기가 멀리 멀리 퍼져나가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2011년의 끝자락. 그녀는 「종소리」 이후 8년 만의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을 들고 다시 돌아와 우리 앞에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먼 곳에서 날아드는 소식이 아니라 그녀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 과연 이번에는 어떤 것들로 채워져 있을까. 새로운 책을 펼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기쁨을 알려주는 그녀를 직접 만났다.
지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때 인터뷰를 한 후, 1년 6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작년 8월에 뉴욕으로 갔다가, 올 해 8월에 돌아왔어요. 콜럼비아 대학에 객원 연구원으로 가 있는 동안 영역본이 올해 4월에 나와서 제가 머문 시기와 겹쳤죠. 처음엔 그런 스케줄 없었는데 책이 나온 다음에 많은 스케줄들이 생겨서 자유롭게 지내다가 여러 나라 투어를 했어요.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폴란드, 노르웨이, 영국… 이렇게 책이 동시에 나와서 가서 인터뷰도 하고 책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독자들하고 만나기도 하고 그러곤 8월 25일에 돌아왔어요. 돌아 온 다음에 잠깐 호주에도 다녀오고 일본에서도 책이 나와서 일본에도 다녀왔고, 「모르는 여인들」 이 책을 준비하고, 그리고 오늘이 됐죠.
해외 일정이 유난히 많으셨네요.
네, 굉장히. 나도 처음 해 보는 일이었고, 대부분 거의 한 두 달을 3박4일, 4박5일 이런 여정으로 이동하면서 다니는 일을 많이 했어요. 미국에서도 8개 도시를 돌았고.
책이 각 나라별로 언어도, 표지도, 편집도 다른 버전으로 책이 나왔을 텐데요. 그리고 독자들도 나라마다 반응이 조금씩 달랐을 것 같고요. 느낌이 어떠셨어요?
영어 외에 다른 나라 언어는 대부분 나한테는 낯설었어요. 사실 영어도 모국어는 아니니 크게 다르지 않고요. 그렇게 낯설기는 했지만 문학작품은 원래 그렇게 번역을 통해서 국경 너머 독자들한테 소개되고, 여행을 하는 거니까요.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도 있을 테고, 얻어지는 것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언어가 다르니까 내가 썼던 문장이나 그런 것들이 번역 되면서 완전하게 같을 순 없었겠죠. 그래서 여러 가지 리스크들도 발생했겠지만 그 자리를 대신해서 얻어지는 것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로서는 원작에 가깝게 잘 번역되기를 바랐고, 내가 현지에 가서 인터뷰를 하거나 독자들에게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번역 상태가 어떤지 분위기를 통해 느낄 수 있죠. 다행히 해외의 출판사들이 대부분 문학 전문 출판사들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는 가장 최선의 선택들을 해서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웃음)
내 작품이 다른 말로 번역되면서 나도 함께 뜻밖의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어요. 출판 계약을 맺은 나라는 서른 하나인데, 지금까지 열 여섯 나라만 나왔어요. 지금도 나오고 있고, 내년에도 계속 출간될 거예요. 다음 작품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도 계약된 나라도 몇 곳 있고요.
오랜 만에 나온 단편집으로, 여러 작품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수록 작품 중 《모르는 여인들》을 표제작으로 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책에 7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소설들의 주제나 분위기가 서로 통하는 느낌이 있어요. 수록된 작품들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자기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나, 모르는 어떤 사람이 어느 순간 자기 인생 속으로 들어와서 영향을 끼치는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모르는 여인들》이라는 제목이 수록된 7편의 소설을 아우르는 느낌이 들어서 그 제목을 표제작으로 했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제목을 많이 추천했어요. (편집자 : 그 작품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많았어요.) 난 《세상 끝의 신발》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로 결정이 되었죠. 본인은 어땠어요?
저는 작품들 중에 《모르는 여인들》과 《어두워진 후에》 두 작품이 제일 좋았거든요, 그래서 《모르는 여인들》이라는 작품이 표제작인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나도 《어두워진 후에》를 할까 하는 생각도 좀 있었는데, 그 제목은 어느 시인이 쓴 제목이기도 해서 어쩐지 소설보다는 시집에 가까운 제목인 거 같아서 안 했어요.
작품 발표 시기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유영철 사건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습니다.
그 무렵에 직접 그 사건과 연관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매일 뉴스나 보도를 통해서 그 사건을 계속 보고 듣고 느끼고 그랬었죠. 그걸 접하면서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나도 그랬지만, 아마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 같아요. 나 같은 경우는 특히 그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많이 다쳐서 그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 그런 것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나는 작가니까 책상 앞으로 가서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사건을 통해서 인간의 여러 모습이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모습을 보게 되었다면, 내 소설에 등장하는 매표원 여자를 통해서 또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탄생시켜서 나 방식으로 균형을 맞추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자신의 일상, 자신의 삶,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타인을 향해서 열린 마음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통해서 상처 많고 고통 많은 어떤 사람이 그런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됨으로써 구원이랄까, 새롭게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는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썼던 작품이에요.
물론 그 사람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죠. 같은 고향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가족 중에 누가 연관이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인생을 살다가 느닷없이 당한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큰 고통과 상실에 처한 사람, 그 남자로 하여금 땅에 발을 다시 딛고 싶은 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거죠. 우리가 보통 넘어질 때 땅에 넘어지잖아요. 그런데 다시 잃어나려면 결국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해요. 그런 것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 말도 안 되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지만 또 그와 반대로 인간의 숨어있는 아름다움, 강인함, 그런 것에 의해서 일어나기도 하는 그런 균형을 찾고 싶었던 때에 쓰여진 작품이에요. 아주 미약하고 그런 큰 사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타인을 적극적으로 조건 없이 환대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 하나를 창조해서 세상 속에 섞어 놓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는.
그 작품 쓰고 나서 그 시간을 조금 딛고 나갈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내가 찾았듯이 읽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왜냐면 작가가 쓰는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작가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요. 세상에 섞여서 퍼질 때는 이제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다른 읽는 이의 삶 속에 퍼져 들어가서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현대인이 되어 오는 동안 잃어버린 인간 적인 접촉이나 친밀감 그런 것들을 섞어 놓는 작업을 이 일곱 편의 작품을 쓰면서 끈질기게 했던 것 같아요. 교정을 보면서 내가 그랬었구나, 하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단편을 쓸 때, 악행으로든 선행으로든 무엇으로든 수면 위에 떠올라져 있는 사람들만 우리가 얘기하고 보고 그러니까 마치 그 사람들이 세상을 다 끌고 나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 사실 우리를 진짜 변화시키고 다른 삶 속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계속되는 타인에 대한 배려, 또 그들이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자기 일, 일상들. 이런 것들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누군가는 빛나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작품 속에 내가 집중 조명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요.
책 속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작품이지만 각 작품의 인물들이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던 거 같아요. 상처입고, 힘든 순간을 가진 등장 인물이 있으면, 그 상처를 보듬어 주고 위로해 주는 ‘모르는’ 누군가가 등장하고.
우리는 동시대를 사니까, 같은 것을 경험하고 같은 냄새를 맡고 같이 또 다른 시간을 같이 가고 있으니까, 나쁜 일도 그렇지만 아주 좋은 일들도 그렇게 모르는 사이에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내가 쓴 문장들, 내가 발견해 냈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결국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수 많은 모르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건져진 거잖아요. 그걸 토대로 내 상상력이나 작품을 쓰는 힘 같은 것들이 보태져서 만들어진 거지만 기본은 결국 그런 걸로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개개인 사이에 있어야 할 친밀감을 많이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거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발견해 내줘야 하는 시대에 있다는 느낌이에요. 관계 맺고 있는 사이에, 서로에게서 상대의 빛나는 부분들을 발견해내서 하나씩 이 세상에 퍼트려주는, 나는 너의 어떤 것을 발견하고 또 너는 나의 어떤 것을 발견하고, 그런 것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간에 살고 있는 거죠. 내가 쓰고 있는 소설은 그걸 위한 작업인 거 같기도 해요. 그렇게 뭔가 재발견 해내게 해주는 가장 적절한 것이 언어라고 소설을 쓰면서 계속 생각했던 거 같아요.
서로 발견해서 등불들을 켜주는 그런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기 자신이 하찮고 보잘것없고 쓸모 없는 인간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삶이 내가 모르는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빛나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 이 글은 대교 리브로 웹진 부커스에 소개 된 글을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리브로 웹진 부커스에서 '김어준'씨와의 인터뷰 전문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리브로 웹진 : http://www.libro.co.kr/Main/Webzine.aspx
인터뷰 바로가기 : http://www.libro.co.kr/Webzine/WebzineContent.aspx?wzcode=0301&aid=15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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