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자유로운 조국을 소원한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는 일본의 모진 고문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였어요. 또한, 1919년 3·1 운동 직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청년들의 가슴에 독립운동의 불씨를 심어주었는데요. 그렇다면, 백범 김구 선생이 목숨을 바칠 각오로 독립운동을 지도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백범 김구 선생에게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던 걸까요?

오늘은 [소빅스 MI인물이야기]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의 위대한 힘을 찾아볼게요! :)

 

 

 

 

 

'백범'이란 가장 낮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뜻하는데요.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독립운동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이름에 담은 사람이 있어요. 바로 백범 김구 선생(1876년~1949년)이에요.

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 국장으로 지내며. 독립운동가들을 지도하고 지키는 일을 맡았어요. 또한 광복 이후에는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뉘자, 통일 정부를 세우는 데 온 힘을 다했어요. 이렇게 백범 김구 선생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이끌며,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자 지도자가 된 이유에는 김구 선생만의 뛰어난 지능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바로 타인의 능력과 의도, 감정 등을 이해하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행동을 하여 원만한 관계를 이끌어 가는 인간친화지능이에요. 인간친화지능이 높은 백범 김구 선생은 일본에 억압받는 백성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어요. 또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맡아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지도하였어요.

 

백범 김구 선생에게는 인간친화지능뿐만 아니라 자기성찰지능도 높았어요. 그래서 항상 자신의 목표인 독립만을 생각하고 독립을 위해 애썼어요. 먼 나라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으며, 독립운동을 지휘했어요.

 

 

김구 선생 이름 앞에는 '백범'이라는 호가 꼭 붙는데요. 호는 본래 이름 이외에 허물없이 쓰기 위하여 지은 이름인데요. 김구 선생은 스스로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 모든 사람이 적어도 자신만 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뜻을 호로 나타냈어요. 또한, '백범' 외에도 여러 이름이 있었는데요. 아이 때의 이름은 창암이고, 본래 이름은 창수였으며, 나중에 이름을 구로 바꾸었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 이후에 만들어졌으며, 말 그대로 정부를 세우기 위해 준비하는 정부를 의미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며, 다양한 독립운동을 수행했는데요. 세계 곳곳에 외교관을 보내 대한민국의 독립을 알리고, <독립신문>을 만들어 조국의 국민과 외국 동포에게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렸어요.

또한, 이봉창과 윤봉길 등의 독립운동가들의 의거를 주도하였으며, 독립을 위한 비밀 조직 광복군을 조직해 빼앗긴 우리 땅을 되찾기 위한 준비를 하기도 했어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봉창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늘 차별을 받으며 일을 했어요. 이봉창은 이러한 서러움을 당하는 것은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임시 정부를 찾아가 한인 애국단에 들어갔어요. 일본 도쿄에서 일본 왕에게 수류탄을 던졌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어 3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윤봉길은 독립운동을 하기 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한글을 가르치는 등 농촌 계몽 운동을 했었는데요. 일본의 철저한 감시 아래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윤봉길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야만 농촌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인 애국단에서 활동을 했어요. 윤봉길은 상하이에서 열린 일본 왕의 생일 축하식에서 폭탄을 던지는 홍커우 공원 의거를 거행하였어요.

 

 

 

[소빅스 MI인물이야기]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살펴보았어요. 우리의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심과 정신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시길 바랄게요! :)

 

 

by 대교 2015. 8. 26.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