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을 꿈꾸던 당신에게,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당신이 진짜 주인공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아뵤~.” 하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현란한 몸동작으로 적들을 물리치는 작은 몸집의 동양 남자, 이소룡. 그는 언제나 주인공이었으며, 모두의 우상이었고, 절대자였다. 많은 이들이 그를 동경했고, 그처럼, 아니 그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다들 무술을 배우고, 쌍절곤을 돌리고, 발차기를 했다. 정의의 인물이 꼼수를 쓰는 악한 인물을 순수하게 힘만으로 제압하는 그가 출연한 영화 속 장면들은 온갖 편법이 난무하던 당시에 꿈꿀 수 있는 가장 통쾌한 형태의 승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그에게 열광했던 걸까. 하지만 그는 너무 짧게 빛났다. 어쩌면 그랬기에 전설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바로 그 빛나는 주인공 이소룡, 브루스 리를 꿈꾸던 한 남자 ‘나의 삼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서자였기에 눈치 보느라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도 않고 눈에 띄게 행동하지도 않았던 삼촌. 어눌하고 말도 살짝 더듬지만 착한 삼촌. 나이차이도 많이 나지 않아 형보다 더 동기간처럼 자주 어울리고 따랐던 삼촌. 그런 삼촌의 삶을 “삼촌은 그냥 삼촌”이라고 말하며 좋아했던 나, 상구의 시선으로 담아낸 이 작품은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만 순수한 한 남자가 녹록하지 않은 삶을 기어이 살아내는 혹독한 과정을 흡입력 있는 진행으로 그려내고 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이 살던 삼촌이 고등학교를 졸업기념으로 빨간 오토바이를 가지고 싶어하고, 그걸 갖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뀐다. 평생을 걸고 사랑하게 될 사람을 만나고, 이소룡 같은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된다. 또한 원하고 소망하는 것들을 가지기 위한 길엔 늘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거친 삶이 시작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알고 있든 혹은 모르고 있든 관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일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시절.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충무로 영화판과 폭력세계에서 삼촌이 겪는 일들을 당시의 실제 여러 사건들과 적절하게 버무린 이야기 진행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떠오르게 한다. 그 영화처럼 섬세하게 시대의 모습을 살려낸 분위기와 이야기의 흐름은 악착같이, 혹은 그럭저럭 어떤 방법으로든 그 시절을 견디고 살아낸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 지는데 일조한다.  

폭력과 권력으로 많은 것을 얻고 잃은 사람, 돈으로 많은 것을 갖고 버려야 했던 사람, 다 가지고도 외로웠던 사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 독해져야 했던 사람까지 「나의 삼촌 브루스리」에는 삼촌과 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여러 일을 겪는 동안 사람들은 삼촌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적이었던 사람이 편이 되고, 희망이었던 사람이 절망이 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삼촌도 나도 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한다.

 

 “꿈이 현실이 되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야. 꿈을 꾸는 동안에는 그 꿈이 너무 간절하지만 막상 그것을 이루고 나면 별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거든.
그러니까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정말 창피한 건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되는 거야. 그 때 내가 원한 건 네가 계속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거였어.”

 
삼촌이 동경하던 이소룡을 좇아 영화배우가 되기로 한 후 꿈을 이루기 위해 상경하여 머물렀던 중국집 마사장이 한 이 말은 삼촌이 왜 이 소설의 주인공인지를 말해준다. 브루스 리를 동경하고, 그의 모습을 흉내 내던 삼촌은 영화배우가 되지만 실상은 조연도 아닌, 스쳐 지나는 장면에 등장하는 단역 배우일 뿐이었다. 매 장면에 충실한 배우였으나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는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던 마사장에게 미안하고 창피해한다. 하지만 마사장은 많은 것을 가졌지만 꿈이 없었고, 자신의 꿈인 줄 알았으나 다른 이의 꿈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온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삼촌의 자각을 돕는다. 그녀는 삼촌이 꿈을 꾸는 것에 정당성을 주고, 꿈을 따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다독여준다. 그녀의 위로에 삼촌은 다시 한번 달라진 눈빛을 품는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된다. 브루스 리가 되겠다는 꿈,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겠다는 꿈. 그를 움직이는 건 언제나 꿈이었다. 가진 것도 없고, 욕심도 없었던 그가 이 소설의 많은 등장인물들을 제치고 주인공일 수 있는 이유는 불행과 실패 속에서도 끝까지, 마지막까지 꿈꾸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이야기꾼’ 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권, 총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대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등장인물도 많고 사람이 많은 만큼 각각 다 사연이 있고 굴곡이 있어 이야기도 많다. 그럼에도 억지스럽거나 어색하거나 거추장스러운 부분이 없다. 오히려 많은 이야기들이 여러 등장인물들을 알게 모르게 연결시켜 바로 그 곳이 각 인물들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라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든다. 우리 삶이 그렇게 알게 모르게 누군가와 닿아있고,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주인공들이 취직하면서, 결혼하면서, 헤어지면서, 다시 만나면서 끝을 보여주는 영화나 소설과 달리 삶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삶은 때론 만들어낸 이야기 보다 더 개연성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리 치이고 저리 깨지면서 배우다 보면 시간이 가고, 세월이 쌓이고, 나이를 먹는다.

그렇게 경험치를 차곡차곡 모아 희극인지 비극인지의 구분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주인공’으로 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 아등바등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삼촌 브루스리」가 술술 읽히는 이유도 아마 바로 그런 것일 거다. 주인공이기를 꿈꾸는 모두에게 너만, 네 삶만 그렇게 엉망인 것이 아니라는 위로. 하찮은 오늘이 어쩌면 중요한 내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격려를 건네는 소설. 그 위로와 격려로 지친 하루를 잠시 내려놓아 보는 건 어떨까 싶다.

* 글은 대교 리브로 웹진 부커스에 소개 된  이예지<whoyouaki@libro.co.kr>   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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