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시절 영의정을 지내고, 퇴계 이황에게 학문을 배워 해박한 지식을 겸비했던 인물이 서애 유성룡이에요. 특히, 유성룡은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군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을 선조에게 천거하였으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숨은 영웅이기도 해요.

<징비록>은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기록을 담은 전란서로서, 임진왜란의 과정과 결과를 상세하게 볼 수 있는 책인데요.

유성룡은 후손들이 징비록을 앞날의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징비록을 썼다고 해요.

 

역사 속 인물이 쓴 고전을 담은 <소빅스 참역사고전>에서도 유성룡의 징비록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소빅스 참역사고전>의 징비록을 자세히 살펴볼게요! :)

 

 

 

 

 

임진왜란은 1592년이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군이 경상도 지방의 성을 공격하며 시작되었는데요. 전쟁 초기에는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조선군이 거듭 패하고 말았어요. 결국 선조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르기도 했어요. 하지만 전라 좌수사 이순신 장군의 승리와 명나라의 지원, 백성들이 스스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에 맞서 싸우며 임진왜란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1597년 9월, 이순신은 명량 앞바다에서 10여 쳑의 배로 200여 척의 배를 거느린 일본군을 물리치며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 싸움이 바로 명량 대첩이에요.

1598년, 이순신은 물러나는 일본군의 빗발치는 총알과 화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지만, 적진에서 날아온 총알에 '내가 죽은 것을 알리지 마라!'라고 당부하고는 목숨을 거두었어요. 결국 일본군들이 달아나고, 이순신 장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조선군은 모두 통곡하였다고 해요.

그 뒤, 일본군이 조선 땅에서 모두 물러갔고, 7년 동안의 전쟁은 막을 내렸어요.

 

 

 

 

[ 지난날을 뉘우쳐 앞날의 교훈으로 삼는다 ]

1599년,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안동으로 내려온 유성룡은 자신이 죽기 전, 임진왜란의 과정부터 결과까지 모든 것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나라의 중요한 벼슬을 맡으며 보았던 조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임진왜란의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갔는데요. 대략 1601년부터 쓰기 시작해 1604년 무렵 징비록을 완성했어요.

<징비록>의 '징비''지난날을 뉘우쳐, 앞날의 교훈으로 삼는다.'라는 뜻을 가졌으며, 징비록에는 조선과 일본, 명나라 사이의 외교 관계, 전쟁의 피해로 고통받은 백성들,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인물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요. 여기에 유성룡의 평가까지 담겨 있기도 해요.

징비록은 유성룡이 죽은 뒤 1633년에 그의 아들 유진이 유성룡의 글을 묶은 문집 <서애집>을 펴내면서 세상에 알려졌어요. 1712년 숙종 때에는 징비록을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금했으며, 오늘날에도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료 여겨, 국보 제132호로 지정하였어요.

 

[ 나라를 구한 재상 유성룡 ]

유성룡은 1542년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21세에 퇴계 이황에게 학문을 배웠어요. 1566년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가장 높은 벼슬인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겸했으나, 임진왜란이 끝난 해인 1598년에는 반대 무리의 모함으로 벼슬에서 물러났어요.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숨은 영웅으로 불리는 까닭은 임진왜란의 모든 상황을 총지휘했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전부터 일본군의 침략을 대비했기 때문인데요. 이순신과 권율을 선조에게 천거하고, 사람들을 모아 군대를 만들고, 성곽을 다시 쌓는 일과 화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무기를 제작하는 데에 힘을 쏟았어요. 임진왜란 중에는 명나라를 설득해 지원군을 보내도록 했으며, 명나라 제독 이여송과 함께 치밀한 작전을 세워 평양성을 되찾기도 했어요.

 

[ 임진왜란을 기록한 또 다른 책 ]

임진왜란의 과정부터 그 시대의 상황까지, 임진왜란을 기록한 책은 징비록 외에도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와 전쟁 중 일본에 끌려갔던 강항이 쓴 <간양록>이 있어요. <난중일기>에는 임진왜란 전투 상황에 관한 기록과 부하와 백성을 사랑하는 이순신의 마음 등이 쓰여 있으며, <간양록>에는 강항이 일본에서 경험한 것이 쓰여 있어요.

 

 

 

 

[ 명을 무너뜨리고 새로 등장한 청 ]

임진왜란은 명나라가 지원군을 보내면서 조선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는데요. 조선에 지원군을 보낸 명은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입었어요. 또한, 임진왜란에 정신을 쏟는 사이 만주의 여진족이 힘을 키워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후금은 이후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명나라를 무너뜨린 다음 중국 대륙을 차지했어요.

 

[ 조선의 피해 ]

조선 땅에서의 임진왜란은 전 국토를 황폐화로 만들었으며,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일본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도 많았어요. 불국사와 궁궐 등의 건축물들이 불타고, 많은 문화재가 일본에 약탈당하기도 했어요.

또한,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받고 관직을 팔기도 하고, 전쟁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관직을 마구 주면서 양반 중심의 신분제도가 흔들리게 되었어요.

 

[ 문화 발전을 이룬 일본 ]

일본은 임진왜란에서 패했지만, 조선에서 강제로 끌고 간 수많은 조선의 유학자와 기술자, 약탈해 간 서적과 문화재 등으로 문화가 크게 발전했어요. 특히, 조선의 인쇄 기술자는 일본의 인쇄술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조선의 도공 또한 일본의 도자기 기술을 발전시켰어요.

 

[ 임진왜란 후 조선과 일본의 관계 ]

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람들은 일본을 굉장히 미워했는데요. 일본에 새로 들어선 에도 막부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다시 교류할 것을 청했어요. 이에 조선은 승려 유정을 일본에 보내 조선 포로 3,500명을 데려온 다음 다시 외교 관계를 맺었는데요. 다만, 부산 동래의 왜관에서만 일본 사람의 교역을 허락했어요.

그리고 일본의 요청으로 통신사를 열두 차례 보내며 조선의 학문과 기술, 문화를 전해 주었습니다.

 

 

 

 

 

< 소빅스 참역사고전> 징비록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의 상황과 임진왜란 과정, 그 이후의 조선의 모습들을 깊이 있고, 재미있게 알아가시길 바랄게요! :)

 

by 대교 2015. 7. 8.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