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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일상

오늘의 독도의 날! 독도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보아요!



10월 25일, 오늘은 '독도의 날'이에요. 현재 독도는 어엿한 대한민국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영유권 분쟁 논란이 끊임 없이 불거지고 있는데요. 이에 오늘은 독도의 날을 맞이해 우리 아이들이 알아야 할 독도의 역사와 가치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독도의 날은 1900년 10월 25일,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고, 일본의 영유권 야욕으로부터 독도 수호의 의지를 표명하고 대내외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천명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에요.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독도의 날을 지정하고 2005년부터 이날을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하여 서명운동을 시작했는데요. 그 결과 2008년 8월 27일에 독도의 날 제정을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2010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에서 16개 시·도 교총, 우리역사교육연구회, 한국청소년연맹, 독도학회와 공동 주체로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전국 단위 독도의 날을 선포하였어요. 독도의 날 지정은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고 강력한 독도수호 의지를 세계 각국에 드러내기 위한 날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답니다. 





독도는 신라시대(512년)부터 우리 땅에 소속되었어요. 이사부는 신라의 제17대왕인 내물왕의 4대손으로 울릉도에 있던 우산국과 우산국의 부속 섬인 독도를 신라로 복속시킨 업적을 이룬 인물이에요. 당시 삼국 시대에는 현재의 울릉도와 독도를 다스렸던 작은 나라, 우산국이 있었는데요. 이사부가 신라로 복속시킨 이후 우산국은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왕조가 세워진 이후에도 내륙의 왕조와 조공관계를 맺고 토산물을 바쳐왔답니다. 이사부는 울릉도와 독도가 신라에 복속된 근원을 제시한 최초의 역사적 인물로 평가 받고 있고, 그의 업적은 독도가 신라시대 때부터 한민족의 땅임을 주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답니다. 





독도는 조선시대에는 '삼봉도', 조선시대 후반인 1794년에는 '가지도'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어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울릉도를 울도군이라 칭하고 울릉전도와 죽도(竹島)·석도(石島)를 관할하도록 정하였는데, 여기서 석도가 바로 우리가 아는 독도랍니다. 석도는 '돌로 된 섬'이라는 뜻의 '돌섬'을 한자로 옮긴 것이에요.


한편, 전라도 방언에서는 '돌'을 '독'이라 하여 전라도 남해안 출신의 울릉도 초기 이주민들은 '돌섬'을 '독섬'이라 불렀는데요. 여기서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獨島)'라 부르게 되었고, 독도라는 이름은 1906년 울릉군수가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에서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되었어요. 








독도가 문한 속에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예요. 앞서 신라 지증왕 13년에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했다는 부분을 소개해드린 바 있는데요. 문헌을 살펴보면 당시 독도는 '우산도'로 불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고대 일본 고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채색되지 않은 채 경외도 선 밖에 그려져 있었다고 해요. 당시 일본인들은 독도를 일본 영역 밖의 섬으로 인식했는데요, 1905년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은 독도의 군사적·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고 그곳에 망루를 설치했어요. 이후 '독도는 무주지'라 주장하며 독도를 다케시마로 명명하고 시마네현에 편입시켜버렸죠. 당시 대한제국은 1906년에 맺은 을사조약으로 인해 외교권을 박탈당해 일본에 항의할 수 없었어요. 이후 독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반환되었지만,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고 영유권이 일본에 있음을 주장하며 분쟁을 일으키는 중이에요.





조선 후기 숙종실록을 살펴보면 한일간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최초의 논쟁인 '안용복 사건'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요. 안용복은 조선의 어부로 독도 인근을 넘어와 활동하는 일본 어부들과의 마찰로 일본에 끌려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일차적으로 독도가 한국의 땅임을 확약 받았고, 이후 자발적으로 한 번 더 일본을 방문해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도록 하고, 일본 정부가 일본 어민의 도해와 어업활동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어냈어요. 


안용복의 활약으로 조선과 일본 및 일본 내 대마도와 막부에서도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고, 마침내 1696년 1월 아부풍후수(阿部豊後守)는 관백 덕천강길(德川康吉)의 재가를 얻어 "지리적으로 일본 보다는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조선의 지계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유시(諭示)했어요. 즉,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한일간의 독도의 영유권 문제는 1696년 이미 해결이 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안용복은 민간의 신분으로 관리를 참칭하고 자발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한양으로 이송되었고, 유배형에 처해진 뒤 행적을 알 수 없게 되었는데요. 독도 영유권 문제가 여전히 불거지고 진행 중인 지금, 우리는 과거에 정부에서도 외교적인 문제로 쉽사리 나설 수 없던 어려운 일을 이루어낸 이 분의 이름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해드렸는데 잘 살펴보셨나요? 이 외에도 독도와 관련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아이와 함께 시청해보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우리의 소중한 영토인 독도의 중요성을 돌이켜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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